[기고] 어렵사리 육성한 수요자원 산업, 죽느냐 사느냐

발전소 하나 없이 수급 안정에 도움 준 DR산업 이렇게 취급해서야 / 이영기

에너지산업신문 승인 2024.11.22 09:11 의견 0

[에너지산업신문]

한전이 최근 제24-06차 전력시장 운영규칙 가운데 수요반응자원거래시장(DR)의 기준용량가격(RCP)을 하향 조정하는 내용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준용량가격은 각 발전기의 기본정산금 산정에 적용된다. 일반 발전자원은 전력시장 진입 연도에 따라 차등 적용되는데, 발전자원이 아닌 DR은 해마다 진입 연도가 ‘올해’로 정해진다. DR은 개설 단위가 1년이기 때문이다.

한전은 진입 연도가 오래된 발전자원은 정산금을 적게 주고 있기 때문에 매년 신규자원이 되는 DR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준용량 가격을 하향 조정하면, 생산성의 원천인 발전기가 한 대도 없이 처음부터 인센티브를 기반으로 하는 DR 산업에는 불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당장 한전은 ‘인센티브’ 기반의 DR에 적용되는 RCP는 당해연도 전체 ‘발전기’ RCP의 설비용량 가중 평균값을 적용할 태세다. 하지만 해마다 ‘인센티브’ 기반의 DR의 RCP 값을 결정하는 산식에 십수년 전 시장에 들어온 ‘발전기’의 RCP 값을 반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인센티브 기반의 DR이 발전기 없이 수요 자체를 관리한다는 점을 더욱 고려하고, 이 때문에 생기는 복잡한 서류 제출 등 절차를 감안해 주어야 한다.

우선 DR은 1년 단위로 개설되기 때문에 매년 5000여개가 넘는 고객 정보와 계약서 등 각종 등록서류를 매년 전력거래소에 제출해야 한다. 또한 오직 DR만이 신규 자원 재구성에 따른 등록시험, 감축시험, 신뢰성시험 등 수차례 검증시험을 통과해야만 한다. DR의 RCP 값을 변경하면서 발전기와 형평성을 꼭 맞추려 한다면 일반 발전설비에도 이 같은 서류를 받고 절차를 거쳐야 할지부터 먼저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수요자원 업계 입장에서 한전이 이번에 규칙 개정안을 통과시키면 기본금의 약 20%가 떨어진다. 이는 어렵게 육성한 유연성 자원인 DR에 대한 참여 동기를 저해할 수 있다. 신규 진입도 하지 않지만, 참여 중인 사업자가 이탈해 시장 규모가 줄어드는 것은 시간 문제다. 참여사업자가 적어지면 신뢰도에도 영향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한전에 몇 차례 흑자만으로는 메꾸기 어려운 만큼의 손실이 있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한 푼이 아쉽다고 해서, 우여곡절 끝에 이만큼이라도 육성해 낸 DR시장을 고사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설령 RCP를 낮추는 한전의 규칙 개정안이 의견수렴을 거쳐 통과된다면, 어렵사리 육성해 온 수요반응(DR)이라는 에너지 신사업의 지속성과 안정성을 훼손하는 것은 물론, 수요관리사업자, 참여사업자도 모두 어려워진다.

더욱이 DR 산업은 발전소 하나 없이 수요가 정점일 때는 공급 측에 서고, 저점일 때는 수요 측에 서서 전력수급 안정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한전에만 아니라 국민경제 차원에서 아주 유용한 산업이다. 그렇기에 단순히 투입비용만 줄이면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수요가 정점일 때 DR이 해낸 일만큼의 비용, 저점일 때 DR이 가진 생산성을 어림셈이라도 해 보고 장기적 안목으로 사태를 냉정하게 파악해야 한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옛말이 있다. 그 옛말이 DR 사업을 바라보는 한전의 안목을 이야기할 때 인용되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이영기 (한국전력수요관리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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