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산업신문]
미국과 중국의 세계 주도권을 쟁취하기 위한 각축전은 이미 다양한 분야에서 진행 중이다. 자동차, 특히 전기차 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시스템 반도체나 배터리 등 연관 산업 분야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내수 시장만으로도 세계 전기차 시장 절반을 차지한다. 내수 시장을 발판 삼아 세계 시장에서도 자국 전기차를 속속 선보이고 있다. 중국 정부는 자국의 배터리 기업에 비공개리에 다양한 지원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 등은 중국산 전기차의 지나친 저가 공세를 문제 삼고 있다. 이들이 중국에 대응하는 무기는 관세다.
미국은 중국산 전기차를 완전 봉쇄하기로 굳게 마음 먹었다. 25%였던 관세를 아예 100%로 높였다. 수출 원가가 3000만원이었다면 미국에 수출하는 순간 6000만원이 된다. 수출한다고 해도 팔리는 족족 제품 가격만큼의 관세를 미국 정부에 내게 되는 것이다. 미국의 관세 공세는 전기차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태양광 패널, 배터리 등 중국이 세계 경쟁력을 가지는 품목이 많다. 미국 정부는 이 제품들도 현재의 2~4배 수준에서 관세를 올릴 준비를 하고 있다.
미국이 문을 걸어 잠그자, 중국산 전기차는 멕시코로 향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멕시코를 통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우회로를 모색 중이다. 미국은 멕시코를 통해 자국으로 유입되는 중국산 전기차에 대해서는 미국과 동일한 관세 제재 이외에 다른 수단까지 동원하겠다는 입장이다.
멕시코까지 막힐 것을 대비해 중국은 자국 전기차의 우회로 가운데 하나로 한국을 상정하고 있다. 당장 우리나라에 완성 전기차를 직접 판매 중인 중국 전기차 회사들은 국내 업체들과 모종의 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완전분해제품(SKD)이나 반(半)분해제품(CKD) 형태의 부품을 수입해 국내 조립 공장에서 한국산 부품을 일부 장착해 조립하는 형식으로 검사와 승인을 받아 달라는 게 그들의 요구다. ‘막대한 이윤과 커져 가는 세계 시장을 함께 나누어 먹자는 솔깃한 제안이다. 자국의 전기차를 ‘메이드 인 차이나’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로 만드는, 그들 입장에서는 신박한(?) 방법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관련 업체는 물론 이를 관리해야 하는 우리나라 정부도 신중해야 한다. 중국이 던진 미끼를 덥석 물었다가는 미국 또한 ‘중국산을 숨긴 한국산’ 전기차에 대해, 그리고 이에 더해 ‘모든 한국산’ 전기차에 대해 어떤 제재를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산 전기차 대공세에 브라질도 현행 10%인 수입 관세를 2026년 35%까지 올린다. 튀르키예도 중국산 전기차 수입 관세를 40%까지 올리고 있다.
유럽의 중국산 전기차 관세는 현행 10%다. 중국산 전기차가 세계 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는 중요한 통로다. 독일 등에서는 중국 BYD 대리점을 통해 저가 전기차가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유럽연합은 위기의식을 가지고 중국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을 조사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다음 달부터 시행될 반덤핑 관세 부과를 최근 결정했다. BYD 등 핵심 중국 전기차 업체를 중심으로 17~37%의 관세를 추가해 평균 21%의 관세가 부과된다. 이 정도면 중국산 전기차는 유럽에서도 운신의 폭이 좁아진다. 신규 업체 진입은 물론 기존 진입한 전기차 업체도 경영이 곤란해진다. 중국도 유럽의 반덤핑 관세에 대해서는 보복 관세를 물리겠다는 방침이어서 사태 추이가 주목된다.
유럽의 중국에 대한 반덤핑 관세 부과는 우리나라에서도 초미의 관심사다. 실용성을 앞세운 현대기아의 전기차 등 한국산 자동차는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10% 내외의 안정적 점유율을 유지 중이다. 하지만 중국 전기차에 대한 각국의 관세 폭탄은 중장기적으로는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인 우리나라에도 악영향이 없지 않다. 물론 중국 정부가 부당한 보조금으로 시장을 왜곡한 데 대한 규제도 필요하기는 하다.
중국산 전기차는 경쟁력이 높다. 배터리 소재 광물이 풍부하고, 인건비는 유럽이나 미국보다 상대적으로 낮다. 중국 내수 시장이 세계 시장의 절반이어서 자국 내에서 우수성이 입증된 차종도 여럿 보유하고 있고, 다양한 고장 정비 데이터를 이미 상당량 축적하고 있다. 보조금이 문제라지만, 중국 입장에서는 세계 시장을 공략하지 못할 아무 이유가 없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은 중국산 전기차의 진입을 철저히 막고 있다. 이 때문에 동남아시아, 중동, 남미 등 신흥 시장에서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진다. 토요타와 폴크스바겐, 현대기아차 등이 주도했던 글로벌 자동차 업계가 향후 BYD 등 중국 업체의 차지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한국의 완성차 업계도 이같은 세계 시장 상황에 철저하게 대처해야 한다. 물론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가 중국은 물론 그 어느 나라에도 관세 장벽을 높이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하지만 신기술 개발과 차별화된 차종, 현지 맞춤형 마케팅 전략은 수출에도 내수에도 주효하다. 일단 수출 전략을 확실하게 다시 짜야 한다.
그렇다면 수출 전략을 짜야 하는 그 기간 동안은 무엇을 해야 할까. 중국이 왔던 길을 되짚어 보면 의외로 답은 쉽게 나온다. 최첨단 기술을 적용한 우수한 전기차 차종을 맞춤형 마케팅을 통해 국내 시장에 널리 보급하는 것이다.
김필수 (김필수자동차연구소 소장, 대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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