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봉산에서] 공기업 자산 매각, 윽박질러선 안 된다

다 팔고 나면 건전성 더 떨어져 어려움 직면할 것…단계별 장기 계획 제시해야

강희찬 승인 2023.05.11 21:41 | 최종 수정 2023.05.13 04:04 의견 0

[에너지산업신문]

한전이 적자 누적에 따른 재무 부담을 줄이기 위해 부동산 자산을 매각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비용 20조원 이상을 절감해 재정을 건전화하겠다는 안에 자산 매각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한전이든 어느 공기업이든 자산을 매각해서 수십조원을 절감한다고 하면 수긍 여부를 떠나서 ‘(당장은) 필요 없는 자산’이 그렇게 많았는지 되물을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금 매각하겠다고 하는 자산은 장기적 시각으로 보면 꼭 필요한 자산이다. 팔아 먹고 나면 아쉬운 정도의 자산이 아니다.

당장 팔아먹어야겠다고 올라와 있는 자산 목록 중에 눈에 띄는 것이 서울 여의도 남서울본부와 역시 서울 서초동의 한전아트센터다. 이곳은 한전의 다양한 부서는 물론, 관계사와 임차인(회사) 등이 함께 사용하는 공간이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회사=장소’라는 개념이 희박해졌다고는 하지만, 기업은 여전히 사무실 문화가 익숙하다. 코로나19가 소강되면서 회사원들은 다시 모이고 있다. 특히나 공기업은 문화가 사기업보다 더 보수적이어서 장소는 여전히 회사, 공기업의 중요한 구성요소다. 비핵심자산이 아니라, 핵심자산이라는 말이다.

전력은 필수재이고, 전력 산업은 국가 기간산업이기 때문에 공기업의 형태로 존속돼 왔다. 민간이 독점하면 요금의 앙등이나, 설비에 적기 투자를 하지 못하는 등의 부작용이 우려됐기 때문이다. 한전은 또한 시기에 따라 이익을 크게 내는 시기가 있고, 최근과 같이 손실을 크게 내는 시기가 있다. 위기 때마다 경상비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자사 소유로 된 부동산 자산은 필수다. 일부 임대로 들어가 있는 곳이 있고, 융자를 낸 곳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경상비 가운데 임대료를 더 들이는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

바꿔 생각해 보자. 손실이 났을 때 다른 것 하지 않고 자산을 꼭 매각해야 한다면, 이익이 났을 때는 다른 것 하지 않고 자산을 사들여야 하는 것인가. 아니다. 한전은 필요 최소한 만큼 자산을 매입해 왔고, 가치가 때때로 높아지거나 낮아져 왔으나 그것과는 관계 없이 본업을 철저하게 해 왔다는 반증이다.

한전은 이제껏 최대 이익도 내 보고, 최대 손실도 내 왔다. 과거의 손실도 시간이 가면서 상쇄했고, 그 후에도 이익을 내 보지 않은 것이 아니다. 지금의 손실도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분명히 이익과 상계돼 ‘0’을 만들 것이고, 또 각고의 노력을 해 가면서 시간을 보내면 어느 순간 최대의 이익을 낼 것이다.

그렇기에 자산 매각이라는 현재도 위험하고 미래에도 위험한 일을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다. 그보다는 수익을 낼 수 있는 일을 찾고, 우수한 포트폴리오를 짜내서 장기 계획을 세우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수년간의 가능성을 모두 모아 출구 전략과 계속 전략을 모두 담은 복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들에겐 인기가 없겠지만 전기료를 적으나마 인상을 하자는 것도 그 가운데 하나다.

기나긴 사설을 떠나서 만약에 목록에 나온 모든 자산을 매각했다고 치자. 그렇다면 나중에라도 그것을 도로 사올 수 있는가. 혹은 그것과 버금가는 장소를 마련할 수 있는 여건으로 한전의 경영 상황을 향후 2~3년 단기간에 올려 세울 수 있는가. 그렇지 못하다고 하는 편이 더욱 설득력이 있다.

그도 저도 안 돼 하나 둘 자산을 팔아먹다 보면 결국 한전은 영원히 셋방살이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매각을 한 뒤에는 자기 건물이 아니기 때문에 그 건물들을 사들인 개인이나 회사에 수십년, 수백년 동안 월세를 내야 하는 상황이다. 즉 이제껏 들어가지 않았던 무지막지한 금액의 임대료 청구서가 한전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몇 년 전 어떤 자들이 신나서 떠들어대던 ‘탈원전 고지서’ 따위와는 그 단위와 규모를 달리 한다. 최대의 위기이기 때문에 최대 가격 최대 규모의 최고로 핵심적인 자산을 팔아 먹어야 한다면, 이후에는 가장 큰 위기를 또 맞이할 때 바람막이조차 없다.

부동산 자산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일부 자원 공기업에서 현장 자산이 손실을 보면 당장 매각해야 한다는 주장을 심심찮게 듣게 된다. 아마도 여전히 해외자원개발이라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이들 때문이리라. 하지만 언론에서 뭐라고 떠들든, 복수의 대안을 품은 장기 계획만 있다면 매각이 최우선 과제는 결코 아니다.

개중에는 늦게 틔었으나마 효자 노릇을 하는 사업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부실사업으로 지목받았던 ‘지분’조차 수익을 내서 해당 부문을 흑자로 돌리는 사례까지 있다. 과거에 남들이 보기엔 불효자였지만, 이제 보니 지극한 효성을 지닌 자식이었던 것이다. 당장 위기인 것 같아 이것저것 안 보고 닥치는대로 매각했더라면 재평가를 하고 말고도 없이 아무런 빛도 못본 채 남들이 수익 내는 것을 구경이나 하고 있었을 것이다.

한전이 큰 위기에 직면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위기 때마다 자산을 매각해야 한다면, 그래서 월세살이 공기업을 만들어야 한다면, 그것이 과연 국민들이 원하는 일인지는 곱씹어 봐야 한다. 매각 가격이 얼마가 될지는 모르나, 부동산 폭등 시기의 가격은 아닐 것이다. 내야 할 월세가 얼마가 될지는 모르나, 다른 회사로부터 월세를 받아 가며 작으나마 수익을 올렸던 과거에 비하면 처량한 신세가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 월세를 내다가 한전이 부실해지면 그 위기는 또 무엇을 팔아서 해결할 것인가. 위기가 더욱 깊어지면 그 때는 또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해야 할 일은 아닌가. 그 책임은 과연 누가 지려고 하는가. 한전에게 부동산을 매각하라고 윽박지르는 이들은 대체 누구인가.

정부, 여당, 산업부 장관, 기재부 장관, 한전 사장, 그 어느 누구라도 책임은 지기 싫은 일, 현재의 위기를 빌미 삼아 미래의 더 큰 위기를 불러 올 수도 있는 그 일을 한전이 하려고 한다. 자산을 닥치는 대로 팔아먹어 거지가 된 한전은 그 자체가 국민에게 부담이 됨을 알아야 한다. 그 누구라도 그같은 일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서울 서초동 한전아트센터 전경. (c)한국전력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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