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산업신문]

국내 연구진이 철강 공정 온실가스를 기존 방식에 비해 98% 줄여 사실상 극소로 배출하는 전기식 열처리(소둔) 기술을 세계 최초로 실증했다.

12일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에 따르면 이 기술은 기존 화석연료 연소 방식을 대체하면서도 품질·생산성을 유지하고 설비비까지 줄일 수 있다. 재생에너지와 결합하면 사실상 완전한 무탄소 공정을 구현할 수 있어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대응도 할 수 있다.

이후경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에너지융합시스템연구단 박사 연구진은 아연도금 강판 제조 과정의 핵심인 소둔 공정을 화석연료가 아닌 전기로만 가동하는 ‘무탄소 소둔 시스템’을 실증하는 데에 성공했다. 이 공정은 자동차·가전제품에 쓰이는 아연도금 강판의 가공성을 확보하기 위해 강판을 가열·냉각하는 필수 단계다. 지금까지는 천연가스 등을 태우는 연소식 소둔로가 일반적이었다. 철강 산업은 이런 가열 공정 때문에 우리나라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약 15%를 차지하는 대표적 다배출 업종이다.

연구진은 기존 소둔로의 내화 구조와 강판 이송 장치는 그대로 두고, 버너 대신 상·하부에 전기 발열체를 배치하는 방식으로 가열 시스템을 전기식으로 바꿨다. 발열체와 강판 사이의 거리를 정밀 설계해 복사열로 빠르고 균일하게 가열하면서도 벽면 열 손실을 최소화했다. 두께 0.49㎜ 강판을 750℃에서 소둔한 결과, 강판의 색상·조직·기계적 특성이 기존 연소식 소둔로와 동등한 수준을 보였다. 배기가스 중 이산화탄소와 질소산화물 농도는 98% 이상 줄어든 것을 확인됐다.

전기식 소둔로는 연소식 공정에 필요한 연료·공기 공급설비, 버너, 배기 시스템이 필요 없기 때문에 설비 투자비와 설치 면적을 약 40% 줄일 수 있다는 것이 에너지기술연구원 측 설명이다. 연구진은 이번 기술이 아연도금 강판을 넘어 철강 전반, 나아가 에너지 다소비 산업의 다양한 열처리 공정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기 소둔로 기술은 재생에너지 전력과 결합해 ‘완전 무탄소 열처리 공정’을 만들 수 있고, 한국 철강 업계 수출 비중이 높아 국제 규제 대응 전략 기술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유럽연합(EU) 중심 탄소국경조정제도 등 탄소 집약 제품 규제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저탄소·무탄소 공정을 확보한 철강 제품은 수출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연구책임자인 이후경 박사는 “이번 연구 성과는 버너를 전기 발열체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무탄소 가열을 구현할 수 있음을 보여준 세계 최초 사례”라며 “강판의 폭·두께·이송 속도에 따라 최적의 발열체 배열을 자동 설계하는 AI 기반 설계·운전 기술로 확장하고, 국내 철강사의 상업용 설비 실증과 해외 수출까지 이어지는 ‘수출형 무탄소 가열 솔루션’으로 발전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에너지·열공학 분야 국제학술지 ‘어플라이드 써멀 엔지니어링(ATE)’에 2025년 9월 게재됐으며, 산업통상자원부가 지원하고 ㈜삼우에코 현장에서 실증했다.

삼우에코 전기소둔로 실증현장에서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연구진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후경 책임, 이은경 전문연구위원, 정우남 선임, 고창복 전문연구위원. (c)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