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 고전에서 배운다] ⑤ 적정한 거리 두기의 예술

전쟁 같은 세상에서 아군과 적군 사이에 있는 많은 이들을 주목하기

최웅 승인 2024.07.19 23:51 | 최종 수정 2024.07.20 00:49 의견 1

[에너지산업신문]

에너지산업에는 다양한 기업이 있습니다. 에너지산업 기업에는 사람이 있습니다. 고전은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이 남겨 놓은 기록을 수백 수천년을 걸쳐 검증하고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온, 미래까지 관통할 수 있는 지혜입니다. 에너지산업신문은 다양한 에너지산업 기업의 에너지산업인들이 동서양 고전에서 배울 수 있는 인간관계의 지혜를 매주 금요일 연재물로 게재합니다. -편집국-

속 좁고 간사한 사람을 매섭게 대하기는 어렵지 않으나, 미워하지 않기는 어렵다. 점잖고 어진 사람을 공손히 대하기는 어렵지 않으나, 바른 격식을 갖추기는 어렵다.

待小人不難於嚴, 而難於不惡, 待君子不難於恭, 而難於有禮(대소인불난어엄, 이난어불오, 대군자불난어공, 이난어유례. 채근담(菜根譚) , 전집(前集) 36).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경쟁이 심한 사회라면, 그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 됩니다. 처음 다가오는 사람을 애써 피할 것도 없고, 떠나는 사람을 애써 붙잡을 필요도 없습니다.

판단의 기준은 항상 자신이지만, 무리하게 재단하다 보면 중요한 것을 잊을 때도 있습니다. 방향도 동과 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남과 북도 함께 있습니다. 심지어 동과 남 사이에도 무한한 방향이 있습니다. 일도양단이 필요한 경우가 없지 않지만, 사람은 그렇게 나누기가 어렵습니다.

나눠야 될 때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전쟁이 격렬할 때, 나의 생사가 바로 문제가 될 때는 어쩔 수 없이 피아식별, 편가르기를 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격전이 끝나고 소강 상태일 때부터라도 사람을 보는 조금 더 다양한 기준이 중요해집니다.

전쟁이 아닌 일상을 살면서 내 편과 내 적 사이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가까웠던 사람은 어느 새 멀어지고, 생각지도 않았던 이들에게 도움을 받는 일도 이 세상에는 많습니다. 심지어는 내 편이었던 사람이 내 적으로 바뀌는 경우가 없지 않습니다.

그 때마다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탈 필요도 시간도 없습니다. 한 발짝만 뒷걸음질해 보면 별일도 아닙니다. 내 편이었던 사람은 사실은 내 편이 아니라, 그 사람 편입니다. 내가 그 사람이 내 편인 줄 알았던 것뿐입니다. 내 적이었던 사람도 내가 그렇다고 생각했던 것뿐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사람을 대하는 방법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미운 사람은 내가 밉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호감 가는 사람은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생각하는 계기는 찰나, 일부입니다. 다른 순간이었다면 다르게 반응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속 좁고 간사한 사람들, 내가 그렇게 생각한 사람들을 미워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해 보입니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엄격하게 대하는 게 쉽습니다. 엄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둘 사이에 약간의 거리나 벽을 두어야 합니다. 물론 거리가 너무 멀어지면 마음의 거리도 꽤 멀어집니다. 벽을 너무 높이만 쌓으면 어느 정도 버티다가 심하게 무너질 수 있습니다. 높이 쌓느라고 품도 많이 듭니다.

적당한 거리에 높지 않은 벽을 사이에 두고, 혹시나 마음에 안 드는 점이 있다면 타산지석으로 삼으면 될 일입니다. 미워하면 꽤 많이 신경을 쓰게 됩니다. 싸우기 위해서는 꽤 많이 접근해야만 합니다. 신경 쓰다가 내 마음을 그 사람으로 채우고, 싸우다가 내 몸에 그 사람이 안긴 상처를 남깁니다. 이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그 사람과 엄격하게 거리를 두고, 내가 그 사람을 대하는 태도 역시 엄격하게 정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점잖고 어진 사람은 틀림없이 나를 좋게 대해줄 것입니다. 사실 이 말은 앞뒤가 바뀌었습니다. 나를 공손하게 대해 주었기 때문에 나는 그 사람을 점잖고 어진 사람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나를 대해 준 그대로 그에게 돌려주기는 쉽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깊이 생각한 끝에 나를 공손하게 대해 줍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영화 대사는 잠시 잊고, 이유 없는 호의가 없다는 데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 사람은 나와 왜 가까워지려 하는 걸까 의문을 품은 순간, 그 사람과 잠시만이라도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사람은 잠깐 봐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오랫동안 지켜 봤어도 한 순간에 틀어지는 것이 인간 관계입니다. 나를 잠깐동안이라도 공손하게 대해 준 사람에게는 역시 그와 비슷한 공손으로 돌려 주면 될 일입니다. 그를 지나치게 떠받들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매멸차게 물리칠 것도 없습니다. 교묘하게 이용하기 위해 머리를 굴릴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다가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갑니다.

내게 알맞은 내 영역을 설정하고, 나와 다른 사람의 거리를 적절하게 두면 그 사이에 있는 더 많은 사람을 보게 됩니다. 그들 모두를 적과 아군으로 분류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와 친하다고 반드시 본받을 만한 사람도 아닙니다. 무엇보다 내가 본받을 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미워하는 사람,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지만 찬찬히 뜯어 보면 본받을 만한 점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와 가까운 사람들이 그 점을 발견했을 수도 있습니다. 나와 맞지 않는다는 점만 빼면 흠잡을 데가 없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적정 거리란 바로 그 점을 깨닫는 자리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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