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산업신문]
에너지산업에는 다양한 기업이 있습니다. 에너지산업 기업에는 사람이 있습니다. 고전은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이 남겨 놓은 기록을 수백 수천년을 걸쳐 검증하고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온, 미래까지 관통할 수 있는 지혜입니다. 에너지산업신문은 다양한 에너지산업 기업의 에너지산업인들이 동서양 고전에서 배울 수 있는 인간관계의 지혜를 매주 금요일 연재물로 게재합니다. -편집국-
한쪽 말만을 믿어 간사한 사람에게 속지말고, 자기를 믿어서 객기를 부리지 말며, 자신의 장점을 나타내려고 남의 단점을 드러내지 말고, 자기가 서툴다고 하여 남의 능숙함을 시기하지 말라.
(毋偏信而爲奸所欺, 毋自任而爲氣所使, 毋以己之長而形人之短, 毋因己之拙而忌人之能, (무편신이위간소기, 무자임이위기소사, 무이기지장이형인지단, 무인기지졸이기인지능. 채근담(菜根譚) , 전집(前集) 120).
사람이 생각을 한다는 것은 내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생각의 중심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나입니다. 내가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판단의 주체가 나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고해서 이 세상 모든 일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가 하면, 그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나 이외에도 다른 사람들이 각자 생각의 중심에 자기 자신을 놓고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각자 자기를 중심에 두고 살아가지만, 또다른 자기를 중심에 두고 있는 남을 의식하면서 살아갑니다. 그것이 세상입니다. 결국 세상의 중심에는 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수많은 다른 ‘나’들이 살고 있습니다. 덜 의식하든 더 의식하든 양과 정도는 다르겠지만, 다른 이들을 의식하면서 살게 되고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아니, 그러는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의식한 것까지는 좋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눈에 띄는 결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모든 일은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면 생깁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을 의식한 나머지 그 사람을 철썩같이 믿어 버립니다. 믿을만한 사람을 믿는다면 모르나, 문제는 사기꾼을 믿을 경우입니다. 그 믿음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것이 이미 늦은 때입니다.
다른 누군가는 다른 사람의 존재 자체에는 이의가 없습니다. 의식은 하고 있지만, 별 관심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내가 해야 할 일은 잘 챙깁니다. 그게 지나쳐 내가 모든 걸 다해야 합니다. 하지만 다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지만, 나의 기대와 노력만으로 이 커다란 세상을 모두다 움직일 수는 없는 일입니다. 내가 할 몫을 하고, 다른 이의 몫도 남겨 두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나에게 어떤 우수한 점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다른 우수한 점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대하는 태도 역시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입니다. 나에게 있는 장점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거나 가볍게 자랑하는 것이야 누가 말리겠습니까. 하지만 은근히 그것을 끌어다가 다른 사람의 단점을 들추는 일은 누구나 말리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있는 능숙함도 가볍게 부러워하는 것을 말릴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을 칭찬해주는 것을 기분나빠할 사람도 없습니다. 가볍게 부러워하면서 칭찬해 주는 것은 다른 사람과 자기 자신에게 긍정적인 신호가 될 수 있습니다. 내 능숙함을 옮겨 주고, 그 사람의 능숙함을 내 것으로 만들어 좋은 점을 키워나가는 선의의 경쟁도 할 수 있고, 그 결과는 함께 성장해 나가는 것입니다. 혹은 그럴 기회를 얻는 것입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장점을 시기와 질투의 소재로나 삼는다면, 이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일단 서로의 관계에 발전이 없습니다. 시기와 질투는 의외로 많은 에너지가 들고, 내가 갉아먹은 에너지 가운데 상당히 큰 부분을 차지할 게 뻔합니다. 그렇게 갉아먹은 에너지 일부라도 그의 장점을 복제하거나 내 장점을 더 갈고 닦는 데 사용했다면 인생 결승선에서의 내 모습은 많이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시기와 질투를 안하기로 결정만이라도 했다면, 에너지 소모만이라도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나는 내 생각의 중심임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내 생각으로 짜낸 내 세상에서, 세상의 중심임도 확실합니다. 내 세상의 중심은 물론, 세상의 한 중심에 서 있다고 해도 내가 하는 선택이 모두 올곧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잘못된 선택을 피하기를 연습하고,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연습해야 합니다. 많은 이들과 더불어 살면서 바르고 옳은 선택의 빈도를 높이는 것이야말로 누구나 원하는 능숙함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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