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나 공단 같은 공공기관은 사장이나 이사장 같은 수장들이 실질적으로 경영을 이끌고 있다. 이들은 출신에 따라 관료, 정치인, 내부 직원 등 다양한 배경을 갖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임기가 보장돼 있다는 것이다.
최근 뉴스 지상을 사실상 독점하다시피 하는 어느 공무원만 임기가 보장돼 있는 게 아니다. 산업부 산하의 공공기관은 40여개에 달한다. 그 기관장들 모두 정해진 임기가 있고, 형사소추를 당하거나 대단한 경영상의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그 직을 최대한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관례다.
어느 부처나 비슷하겠지만 특히 산업부 산하 공공기관의 장들은 정권 교체와 더불어 직을 유지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물론, 다른 필요에 의해서라도 국가의 지도자나 정치인은 기관장을 교체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그렇다면 적어도 그 기관은 실제로 경영이 유지되도록, 경영 공백을 최소화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이제까지 3개월이나 6개월 정도의 공백을 두는 것을 예삿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행정만이 아니라, 회사의 경영에도 연속성이 중요한 문제다. 따라서 수장 유고 시에는 해당 기관이 경영의 어려움을 더욱 크게 느끼게 되는 것은 불문가지다. 유고가 길면 길수록 어려움은 가중된다.
김영민 한국광물자원공사 전 사장은 2018년 6월 임기를 6개월 가량 남긴 채 자리에서 물러났다. 다양한 이유가 있었지만, 광물공사와 광해공단을 통폐합한다는 빌미도 있었다. 하지만, 그 후 현재까지 2년 반이 훌쩍 흘렀다. 코로나19로 올 한 해가 특히 속절 없이 갔지만, 광물공사의 긴 경영 공백을 설명하기는 어색하다. 최근 공모에서 정치인 출신이 물망에 올랐다는 소식도 물거품이 되고 보니, 그의 성실함이 더욱 그리워진다.
특허청장 출신인 김 전 사장은 취임하자마자 바쁜 나날을 보냈다.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조정하고 말고 할 것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그는 정부의 구조조정 요구를 묵묵히 감당해 냈고, 당시 돌고 있던 석유공사와 가스공사, 석탄공사와의 통합설 등을 무마하는 데에도 공을 들였다.
현장에서 만난 김 사장은 그야말로 ‘성실맨’이었다. 매각 요구가 거셌던 해외 광산을 직접 방문해 현황을 살피고 헐값 매각을 막는 데에도, 경영난과 인력난에 시달리는 국내 석회석 광산을 돌아보는 데에도 그는 몸과 시간을 아끼지 않는 사장이었다.
해외 사업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민간 기업 지원과 북한과의 광물 분야 협력 등 공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관한 그의 고민은 깊었고, 제한된 환경 가운데서도 고민한 대로 움직이기 위해 노력했었다. 그는 2018년 당시, 광물공사가 1~2년 내에 통폐합되거나 폐지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관련 논의가 있는 곳이라면 굳이 청하지 않은 곳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나섰다. 문전박대를 당하면서도 “사장이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자리”라고 말했던 것이 바로 5월 중순. 그러던 그는 6월 1일자로 면직됐다.
그가 그의 임기를 다 지내고, 다시 두 번의 연임을 해서 지금쯤 퇴임을 바라보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광물공사의 현재는 어쩌면 조금 더 나아지지는 않았을까. 누구도 오려하지 않던 그 자리를 채워 준 그에게는 다소 미안한 이야기이긴 하다.
정권의 교체와 더불어 성실성이나 성과와는 무관하게 자리에서 물러나온 공공기관 수장들은 많았다. 하지만, 그러한 바람이 불었다고 해도 3년 가까이 최고경영자가 없는 기관은 없다. 공모 절차가 길어진다면 광물공사 사장 공백 사태는 3년을 꼬박 채울 가능성도 없지 않다.
타 기관과 통폐합된다 하더라도 적어도 그 시점까지는 경영이 계속되어야 한다. 통폐합이 되지 않는다면 더더욱 경영자가 있어야 한다. 더는 기다릴 수도 없고, 기다려서도 안 된다. 3년은 늦었다고 말하기에도 민망한 기간이다.
혹자는 장기간 수장이 없어서 그 몫의 연봉만큼을 아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있어야 하기에 세운 공공기관이 수장이 없어 경영을 못하는 사태야말로 더욱 큰 낭비다. 사장도 없이 그 몫만큼, 혹은 더욱 많은 일을 해 왔을 광물공사 직원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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