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봉산에서] ‘제6의’ 에너지

위기(?)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다변화는 누구의 선택인가

강희찬 승인 2023.01.18 14:35 | 최종 수정 2023.01.18 14:39 의견 0

[에너지산업신문]

2018년, 깊이 남은 기억이 있다. 국내에서 러시아의 파이프라인 천연가스 도입을 제안하고 고민했던 일이다. 당시 제안자들은 지상(紙上)과 현장에서 수개월동안이나 지도까지 그려 가며, ‘파이프가 중국을 거쳐 서해로, 아니면 동해로 와야 하는지’ ‘내륙만 타고 북한을 거쳐 와야 하는지’에 대해 열띤 토론을 했었다.

지난해 11월에 한 업계 인사와 ‘이 일이 만약에 성사됐다면 얼마나 어려웠겠는지 생각도 하기 어렵다’는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지금은 그 일이 성사되든 그렇지 않든 그다지 힘든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올 겨울이 이렇게 지나간다. 석유와 천연가스 등 국제 에너지 자원 가격은 의외로 크게 오르지 않은 채다. 재고가 부족하면 국제 현물(스폿) 물량을 잡아야겠지만, 일시적 상승 이외에 부담이 될 만한 가격이 아님은 분명하다.

지난해 말, 한전과 가스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을 중심으로 규모가 큰 일시적 적자를 입었다. 하지만 의외로 겨울 절반을 지나 보니, 난방 에너지 소비는 크게 늘지 않았다. 기후변화에 따른 온난화 영향이라면 ‘다행 중 불행(?)’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미국과 유럽 등 외국도 그렇고,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다. 어쨌든 따뜻한 겨울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현재 천연가스 선물, 원유 선물 등 에너지 자원 가격은 단기 상향 중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내릴 것은 자명하다. 최근 일기예보 오보율이 말해 주듯 날씨 예측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따라서 1월 하순부터 2월 초순까지의 기온을 예상하는 것은 섣부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추위 없이 봄이 올 것이 거의 분명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 역시 에너지 위기를 강조하던 지난해 말과 분위기가 달라졌다. 당시는 강한 겨울 추위 때문에 국내 소비자의 난방 에너지 소비가 늘어나고, 이 때문에 위기가 올까봐 경고하는 상황이었다. 그 국면에서 정부 당국자도, 학자도, 업계 인사도 절약을 강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겨울이 반쯤 지난 현재 시점에서 ‘올 겨울 에너지 위기’는 일단 한 시름 덜었다. 그러기에 방한 용품을 나눠주는 에너지 절약 캠페인은 향후에는 어색해질 것이다. 물론, 공용 업무 시설에서 보일러나 전열기를 아예 끄기를 권장하는 것이라면 효과가 없지는 않다.

에너지 자원 가격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개별 회사들의 부채는 어렵지만 정리될 것이다. 국제 유가/천연가스 가격이 완만하게 하락세를 보이면, 수익성이 완만하게 호전될 것이다. 급락세가 국내 에너지 회사들에 꼭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에너지 자원의 수요-공급이 정리 국면을 맞으면 대란 수준의 위기를 준비는 해야겠지만, 염려할 필요는 거의 없다.

수요 공급이 왜 빨리 정리되는지는 변화된 교역 환경이 증명한다. 과거의 석유 파동이 우리나라에 큰 영향을 준 것은 우리나라에 대안이 적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의외로 연료의 대안, 수입국의 대안이 적지 않다. 국내외의 이러한 상황을 잘 이용만 하면,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의 설움을 비교적 쉽게 헤쳐나갈 수 있다.

석유와 천연가스와 같은 에너지 자원은 가장 활성도가 높은 소비재이기에, 과거에 비해 대안이 빠르게 출현할 것은 자명하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유럽의 난방이 큰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은 춥지 않은 겨울 날씨가 일조한 것은 물론이다. 여기에 유럽의 위기에 천연가스를 척하고 내 준 미국을 비롯한 국가들 역시 큰 힘이 됐다.

에너지 절약은 추억을 생각나게 하는 ‘제5의 에너지’다. 하지만 많이 두리번거리지 않아도 위기를 극복할 대책을 제시해 줄, 아니 정확하게는 팔고 싶어하는 ‘제6의 에너지’ 수출국과 다국적 기업이 우리 주변에는 생각보다 많다. 다변화는 우리의 선택이지만, 그들의 선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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