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봉산에서] 개성, 그리고 방경진
북한이 지난 16일 개성공단의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개성공단이라고 하면, 사실 원단을 만들거나 하는 등의 각종 노동집약적 업체를 생각하기 쉽지만, 에너지나 자원 분야에도 관계가 없지 않다. 당장 개성공단이 폐쇄되던 지난 2016년에는 공단에 공급됐던 가스, 전력, 난방열 등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이슈로 떠오르기도 했다.
북의 개성 연락사무소 폭파를 지켜보면서 불현 듯 나에게도 한 인물이 떠올랐다. 바로 방경진 박사다. 그는 광물자원공사, 그 전신인 광업진흥공사 시절 북한의 정촌 흑연광산의 관리책임자였다. 해당사업은 준비부터 본격생산까지 거의 10여년에 걸친, 그로서는 필생의 사업이었다.
그 경력을 기반으로 광물자원공사 남북자원협력실장 등을 지내고, 현장에서의 오랜 실무 경험에서 나온 노하우를 후학들에게 전수하고 학문과 접목해 나름의 연구 성과도 내놓은 자원업계에서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광업협회에서는 기술자문위원으로서도 오랫동안 일했다. 특히 그는 북한 자원에 관해서만큼은 큰 자신감을 보였었다.
그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썼던 칼럼은 그의 기일이던 지난해 5월 18일보다 무려 9일이나 늦은 5월 27일에 세상에 나왔다. 그 글에서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북한은 제재가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해 북한 내 자력갱생 정책을 그 어느 때 보다도 강조하고 있다.(중략) 이 단계에서 북한 광물자원의 공동개발을 위해 필요한 남한의 조치는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그는 항상 북한의 광물 자원에 대해 지나친 장및빛 환상으로 높이 평가하는 것도, 그렇다고 무가치한 것으로 평가 절하하는 것도 경계했다.
“우선 북한의 광산기술개발 수준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북한이 필요로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중략) 북한 광산물은 대부분 세계 경제 품위에 밑도는 낮은 품위를 생산하고 있는데 이는 전력 부족 및 소모품 조달 등이 주요 원인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는 하노이 북미 회담의 실패에 따라 북한에서의 광물 자원 개발 협력 등의 가능성을 높게 보진 않았지만, 완전한 파국으로 가는 것을 최대한 막는 동시에 철저하고 신중한 접근을 해야 한다고 항상 강조했다.
“남한은 남북에 서로 번영이 될 북한 광물자원에 대한 개발에 대한 관심을 놓아서는 안 된다.” 이것이 그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글의 마지막 문장이다.
개성공단은 남북 경제 협력의 가늠자이자 상징이었다. 그곳에 영 좋지 않은 변동사항이 생긴 이 때 남북 관계 전반을 걱정하다, 자원 협력의 아이콘과 같았던 한 인물이 생각나는 것이 우연은 아니리라.
그가 아직도 살아 있었다면, 이번 사건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했을까. 단 한 가지 분명한 건, 그는 끓어오르는 흥분 같은 건 가라앉혔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의 전화 통화에서 했던 말을 그대로 하지 않았을까. “쉽지 않겠지만 분명히 기회는 있을 겁니다.”
숙환이 있었던 걸 몰랐던 사람이 꽤나 있을 정도로 그는 생전에 건강하고 활동적으로 지냈다. 그러기에 그가 꺼냈던 ‘기회’에 대한 희망은 가능성이 없어 보이지 않았다. 그가 우리 곁에 없은 지 1년이 조금 지났어도 활기가 가득했던 그의 말소리와 만면에 띠었던 웃음이 여전히 생생하다.
그렇기에 한 번 더, 희망을 걸어본다. 폭파는 했으나, 완전한 파국은 아니리라. 쉽진 않겠지만, 기회가 없진 않으리라. 개성공단에도, 남북 자원 협력에도.
고 방경진 박사(전 광물자원공사 자원협력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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