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봉산에서] 산업통상자원부, 쇼미더머니

강희찬 승인 2023.09.10 23:59 | 최종 수정 2023.09.11 09:30 의견 0

[에너지산업신문]

정부가 새로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내정한 것을 두고 다양한 매체에서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현직 장관과 내정자의 출신과 성향을 분석하고, 대통령실이나 국무조정(총리)실 인사와의 관계도를 그리기도 한다. 현 장관이 원자력발전이 지지부진한 데 따른 사실상의 경질이고, 내정자는 원자력발전을 강하게 추진할 것이라는 말까지…. 그야말로 다양하다.

각각의 해석이 다 일리가 있지만, 두 사람의 진퇴와 더불어 현 정부 현 상황을 관통하는 근거가 되기에는 모두 약간씩 부족하다. 필자 역시 틀릴 것을 각오하고, 또 한 가지 나름의 해석을 덧붙이고 싶다.

결론을 말하면 내정자 즉 후임 장관은 ‘예산 절감’, 더 구체적으로는 연구개발비와 보조금 같은 경상비용을 줄이는 사명을 띠고 새 의자에 앉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기재부 예산실장과 차관을 지낸 사람을 장관으로 세우는 이유다.

대통령실과 현 정부의 분위기는 정권 처음부터 한마디로 ‘쇼미더머니(Show Me The Money)’다. 제1의 원칙은 ‘벌어오라’는 것이다. 다소 퇴색된 감이 있지만, 취임 초 대통령 스스로가 제1호 영업사원을 자처했다는 점에서도 엿보인다. 더구나 현 정부 1년차였던 올해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가장 큰 변화는 수익성 있는 사업 추진에 가점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는 점이다. 아무런 수익성 사업이 없는 기관에는 신사업 발굴이라도 하라고 했다던, 대신 불요불급한 지출은 줄이자며 ESG 사업이나 후원 및 봉사활동, 중장기 투자 등은 가점이 줄어들었다는 후문이 있었다.

제2의 원칙은 벌어오지 못하면 ‘아끼라’는 것이다. 작년 이맘때 실제로 기재부는 긴축재정의 개인화 버전이라 할 수 있는 ‘무지출 챌린지’ 캠페인 홍보를 직접 했다. 개인에게 권하는 무지출을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에 강권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그 덕분인지 정부가 국회에 제출하는 내년 예산안은 총 지출이 올해보다 2.8% 밖에 늘지 않았다. 증가 폭은 사상 최소다. 이 과정에서 연구개발과 각종 보조금 지출은 된서리를 맞았다.

이 두 가지 원칙 이야기를 길게 푼 것은 실제로 현직 장관과 내정자의 역할이 이 두 가지로 갈라지기 때문이다. 에너지 업계 및 유관 분야 전문지와 일부 정치 매체에서는 현 장관을 원전을 진흥시켜 줄 장관으로 봤지만, 사실 그는 그런 임무를 부여받지 않았다. 그보다는 인수위 시절부터 산업지원과 연구개발을 통해 성장동력을 만들고, 산업과 통상을 연계해 수출산업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 장관의 사명은 수출과 기업투자였다. 수출을 견인하던 반도체 업계가 지난해부터 부진에 빠지면서 유관 회사의 사외이사를 두루 거쳐 온 그를 반색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전 정부 후반기에 추진해 온 원전 수출을 그대로 받아 추진한 그는 일각의 기대처럼 ‘원전’보다는, 그의 주장 그대로 ‘수출’에 방점을 찍어 움직였다.

하지만, 취임 초 그를 반겼던 반도체 업계도 원전 업계도 이 두 업종 모두에 물려 있는 미국 등 대외 환경이 받쳐 주지 못한 탓에 큰 성과는 없는 상황이다. 더구나 취임 3개월도 채 되지 않아 정부 재정 기조가 긴축으로 돌아서는 바람에 그의 계획과 임무는 빛이 바랬다. 필자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장관이 수줍음을 타는 것으로 오해했지만, 그가 처음에 받아들었던 임무에 대해 듣고 난 뒤 오해가 풀렸다.

그렇다면 신임 장관 내정자는 과연 ‘원전’에 방점을 찍어서 움직일까. 필자는 미지수라고 본다. 첫 번째 이유는 전 정부 첫 장관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것이기 때문이다. 원전 ‘수출’은 전 정부 세 명의 장관, 현 정부 첫 장관 모두 추진한 경로의존성 정책이다. 현 정부가 한다고 책임을 추궁당하지 않는다. 하지만 전 정부 첫 장관이 그랬듯 현 정부의 깃발과도 같은 ‘원전’ 정책을 앞장서 추진하는 모양새라도 내는 것은 공직 생활 30년 경력의 내정자가 선뜻 선택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실제로 표면상 전력수급기본계획은 별도의 위원회가 세우고, 장관은 집행만 한다.

두 번째 이유는 앞의 것과 일부 겹친다. 원전은 중장기 에너지 정책이기 때문이다. 대규모 원전은 물론이고, 소형 모듈 원전조차 올해 계획해 내년에 지어 후년에 가동하는 건 절대 쉽지 않다. 혹 앞장서더라도 계획을 세우고 검토하는 데에 임기가 술술 다 간다. 그렇기에 지난 정부가 안 한다고는 했으나 안 한 게 없는 것처럼, 현 정부는 한다고 했으나 한 게 없는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장관의 출신 상, 또는 정부 재정이 긴축 기조라 어쩔 수 없다며 변명하기도 안성맞춤이다.

지난 정부도, 심지어 그 지난 정부도 한다고는 했지만 한 게 없는 원전 정책도 있다. 바로 고준위 방폐물 정책과 원전해체 산업 정책이다. 그 역시 장기 정책이고, 심지어 원전이 현재 들어서 있는 지역에서조차 첨예한 사안이기에 함부로 건드리기 어렵다.

결국 신임 장관이 취임하면 눈에 띄는 변화는 한 가지다. 긴축 기조를 산자부에 뿌리내리는 것이다. 그가 제출하게 될 후보자 청원서를 확인하게 되면 조금 더 분명해지리라.

사소한 이야깃거리 하나. 대통령이 원래 기재부 출신이라면 총애할 준비가 돼 있다는 이야기. 전 정부에서 재난지원금으로 쓰였을지 모를 비상금(?)을 아껴 현 정부에 넘겨준 어떤 부총리 덕분이라지만 과연 그럴까. 그보다는 공약을 지킨다며 뭉텅뭉텅 깎아준 각종 세금 때문에 곳간이 실제로 비어가기 때문이고, 그걸 해결해 줄 사람이 기재부 출신이라고 생각한 때문이 아닐까.

또 하나. 현직 장관 퇴임은 과연 경질일까. 필자는 아니라고 본다. 임명권자 입장에서 첫 장관에 1년 반이면 임기는 길진 않지만 충분하다. 임무와 기조가 변경된 가운데 적임자가 있으니 자리를 비켜 달라는 건 자연스럽다. 굳이 추궁할 책임도 없다. 장관 입장에도 스스로 물러나지는 않으나, 일찍부터 사표를 써 놓고 마음고생이 심하지 않았을까. 입직 15년차 최연소 과장이 되자마자 마다했던 공직이다. 자의반 타의반 자리 내놓기는 시원함 50.1%대 섭섭함 49.9%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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