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봉산에서] 조금 더 깊은, 조금 더 많은…생각

강희찬 승인 2020.05.13 08:15 | 최종 수정 2020.12.19 10:58 의견 0

서울에는 매봉산이라고 불리는 산이 은근히 많다. 한강 북쪽에는 성동구에, 남쪽에는 강남구와 구로구에 하나씩 있다.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그렇다.

그 가운데 강남구 도곡동에 있는 매봉산은 예전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산이다. 돌산, 독구리산, 돌부리산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도곡이라는 말이 원래는 돌골[돌이 있는 골짜기나 동네]이고, 돌골에 있는 산이라는 뜻에서 그렇게 불렸다고 한다.

예전에는 이 산의 산세가 관악산과 우면산에서 이어져 탄천 근처까지였다고 한다. 양재동, 역삼동, 대치동과 포이동 일부에까지 뻗어 있는 제법 큰 산이었지만, 강남 개발로 지금은 단지 도곡동 그 중에서도 렉슬아파트에 폭 쌓여 있다. 남쪽에는 양재천을 바라보고 있고, 역시 도곡동의 고급 빌라 및 소단지 아파트 등에 가려져 있다.

매봉터널과 3호선 매봉역이 존재한 덕분에 요즘은 그나마 이 산의 이름을 아는 이들이 있는지 모른다. 매봉산은 원래는 이 산의 정상, 해발고도가 100m가 될까말까한 그 곳에 있던 ‘매바위’ 덕분에 붙은 이름이다.

터널이며, 도곡역을 끼고 있는 타워팰리스 같은 초고층 아파트들이 아니면, 여전히 시원하게 앞이 트인 채로 매바위에서 양재천의 모습이며, 대모산과 구룡산의 모습을 조금 더 분명하게 볼 수 있었으리라.

원래 서울의 전경은 낮은 건물들이 흩어져 있는 도심 사방에 산이 휘둘러져 있는 광경이었다. 그러던 것을 고층 아파트들이 서서히 채워가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사람이 세운 건물들이 사람이 세우기에는 버거운 산들을 둘러싸는 듯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서울은 물론 경기도 웬만한 곳에서는 다 보이는 잠실 롯데타워는 안 그래도 뒤꼍으로 밀려나는 서울의 얕은 산들의 세력을 완전히 눌러버리고 있다.

매바위가 있던 매봉산 정상에 오르면, 그래도 보이는 전경이 없지 않다. 돌이 많은 골짜기이지만 나무도 제법 우거져 먹잇감을 찾던 매가 눈을 번득거리던 예전만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적으면, 생각이 많아지고 또 깊어진다. 그 산에 오른 것처럼, 조금 더 깊이, 조금 더 많은 생각을 이 자리에 풀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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