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봉산에서] 벌써 받았어야 할 ‘탈원전 고지서’
개편 전기요금에 대한 또 하나의 잡설(雜說)
강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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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1 12:05 | 최종 수정 2023.03.07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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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받았어야 할 ‘탈원전 고지서’
석유, 석탄, 가스 등 연료비와 연동하는 개편 전기요금에 관해 말들이 많다. 그 가운데 특히 난데없는(?) 주목을 끄는 주장은 탈원전 추진에 따라 전기료가 인상된 것을 국민에게 전가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그런 해괴한 주장이 ‘탈원전 고지서’라는 지나치게 야한 제목으로 각종 매체를 물들이고 있다.
결론으로 이런 주장은 난센스다. 탈원전이 아직 시작도 제대로 안 된 점은 차치하고, 요금 조정의 객체가 되는 ‘연료’의 실제 사례에 ‘핵연료’는 들어가지 않았다. 물론 국제 우라늄 가격의 향방이나, 이를 가공한 핵연료의 가격 향방에 따라 요금 조정의 대상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래야만 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핵연료는 빠졌다.
당연하게도 정부는 이번 전기료 개편 방안이 탈원전과 관계가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연료비 조정요금이나 기후환경 요금은 소비자에게 가격신호를 제공하고, 원가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설명은 이번 회차 개편에는 타당하다. 정부의 설명처럼, 유가와 이와 연동된 가스와 유연탄 등 연료 가격이 지난 1년간 낮았기에 전기료는 내년에는 적어도 상반기까지 현상을 유지하거나 소폭 인하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다르다. 합리적인 전기요금 체계를 마련하기 위해, 향후에는 기후 ‘환경’ 요금에 원자로 폐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 등 다양한 요인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원자력을 발전에 활용하기 위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래, 모든 발전용 원자로에 설계수명이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폐로와 폐기물 처리 처분 등은 깊이 고려되지 못했다. 설계수명이 지나면 어느 정도 고쳐서 10년, 또 고쳐서 20년, 다시 고쳐서 30년 하는 식으로 폐기 기한을 연장한 채 폐기 일체에 드는 비용을 유예해 오는 것이 현실이다. 아직 마땅한 방법이 없다고 하지만, 계속 기한만 연장하는 게 최선일지 그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기한 연장된 그 비용을 적은 고지서가 진정한 의미의 탈원전 고지서는 아닐까. 그렇게 보면 탈원전 고지서는 단지 이번 정부 정책을 통해서 작성된 게 아니기에 국민들이 벌써부터 받아 보고 있었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미리부터 보내지는 못했고, 앞으로도 언제 받아보게 될지 알 수 없다. 아마도 다음다음 정부의 전기료 개편에서나 겨우겨우 받아볼 수 있지 않을까. ‘과거 정부에서 이 과제에 대해 해결하지 못해서 아쉬웠다’는 발표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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